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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믿음의 경주자 (히브리서 12:1-2)

믿음의 경주자 (히브리서 12:1-2)


지난 27회 올림픽이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개최되었습니다. 119개국이 참가하여 각 나라의 대표 선수들이 각 종목의 경기에서 기량을 다투게 될 것 입니다.
이번 올림픽 경기 개회 입장식에는 남북한이 함께 섞여서 입장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태극기를 앞세운 대한민국과 인공기를 앞세운 북한이 각자 입장하였는데 올해는 태극기도 인공기도 아닌 제삼의 기를 앞세우고 입장하였습니다.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염원을 달성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올림픽을 보고 특히 달리기 경주를 볼 때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Eric Liddle입니다.
그는 1902년 중국북쪽의 도시 톈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들은 그 당시 런던 선교협회에서 파송한 선교사 였습니다. 그는 중국에 선교중인 부모님과 떨어져 영국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유명한 에든버러 대학교를 다닐 때 달리기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스코틀랜드와 영국을 대표하는 올림픽 단거리 육상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4년에 있었던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주 종목인 100m의 결승전이 주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그는 주일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운동경기를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파리 올림픽 경기 위원회는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의미에서 주일에는 경기 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주 종목인 100m결승전을 포기하여 버립니다. 주님의 날을 지키려는 그의 믿음의 지조를 그 누구도 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순종하기 위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영광의 순간과 명예를 포기하여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그냥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주 종목은 아니지만 주일이 아닌 다른 날에 있는 400m육상경기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상을 뒤엎고 그는 금메달을 목에 다는 여예를 가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달리는 Eric Liddell의 발걸음과 같이 하셨습니다. 그의 달리는 모습은 매우 색달랐습니다. 그는 얼굴을 하늘을 향하고 늘 달렸습니다. 그의 두 눈은 하늘에 맞추고 달렸던 것 입니다. 그것은 Sports Science에서 가장 피해야할 running form 인데도 그는 그렇게 달려서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 EKd에서의 영광의 면류관인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에든버러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올림픽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많은 영국인과 스코틀랜드인들이 그가 이제 사회의 유명인사로 활동 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예상되는 명예와 좋은 위치를 버려두고 자기가 태어났고 아버지께서 섬겼던 중국으로 선교사로 갔습니다. 1945년 중국 공산당의 수용소에서 그는 순교했습니다. 그는 태어나던 그 순간에도 하늘에 시선을 두었고 올림픽 경기의 순간에도 하늘을 바라보았고 공산당의 수용소에서도 하늘을 바라보았던 믿음의 경주자였습니다. 그는 인생의 모든 순간을 믿음의 주요 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 결승점에서 지켜보고 계시며 매 순간을 도우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달려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예수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예수를 바라보며 뛰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사도행전 20:24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런데 목숨과 생명을 받혀 헌신한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 침묵만 하고 계실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선한 싸움과 경주를 끝까지 다하여 승리한 사람들에게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디모데후 4:7-8에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그렇습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요한 야고보 Eric Liddell도 믿음의 경주를 마치고 의의 면류관을 기다리는 허다한 증인들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경주를 우리의 달려 갈 길을 어떻게 가야하는가? 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 1절과 그 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시드니 올림픽이 열리는 주 경기장안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는 선수들을 환호하며 격려하며 지켜보았습니다. 각 국 나라에서 응원차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혹은 한국에서 혹은 미국에서 아프리카에서 유럽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곳에 참석하기 위해 나름대로 대가를 치르고 비용을 지불하였을 것 입니다.
이 믿음의 경주가 있는 경기장에서도 각자의 희생과 고난과 고통의 대가를 치르고 입장한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입니다. 아마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사도들은 제일 좋은 상석에 앉아 잇을 것 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나 Eric Liddell 같은 선교사들도 좋은 자리에 앉아 있을 것 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하셨으니 말씀하신대로 일한대로 각자 상을 받고 다른 위치에 앉아있을 것 입니다.
이런 격려가 운데 우린 어떻게 나의 경주를 해야 하는가?
오늘 세 가지 분명한 경주의 원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짐과 죄를 벗어버리라.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무거운 것”이란 “짐이 되는 것” “장애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운동선수가 경기하는데 불필요하고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와 요인을 제거하는 것 입니다. 수영선수들은 너풀대는 머리카락이 장애가 되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거나 Water cap을 쓰게 됩니다. 달리기선수치고 지방이 무겁게 낀 배나 다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불필요한 지방을 제거할 뿐 아니라 육상선수들은 거추장스러운 의복이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밀착된 간편한 운동복을 입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마가,누가복음을 통해서 믿음의 경주에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심지어 부모, 형제, 집과 전토와 자식까지도 버리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 10:29-30)
믿음의 경주에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리라 하십니다. 그러나 그 버림은 버림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여러배의 축복으로 되돌려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다음은 얽매이기 쉬운 죄가 무엇인가 하는 것 입니다.
원어 적으로 “얽매이기 쉬운 죄”란 “주위에 쉽게 빠질 수 있는 각종죄악” 들을 의미합니다. 사탄과 마귀들은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성도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탐욕을 불어넣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교만으로 그들의 마음을 강팎하게 만듭니다. 정욕에 빠뜨려 몸과 마음을 추악하게 만들려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생각들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7:21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의 경주에 잇는 우리들은 장애가 되는 그 어떤 것도 벗어버리고 쉽게 빠질 수 있는 죄를 차단하고 가볍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짐이 많을수록 죄를 범할수록 달려가는 속도가 떨어지며 추진력이 떨어집니다. 달리다가 걷다가 급기야는 주저앉게 될지도 모릅니다. 짐이 무겁고 죄가 가중되면 계속 달릴 수가 없게 되고 중도포기 탈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내로써 달려라.
우리가 달려가는 믿음의 경주는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 경기와 같은 장거리 경주입니다. 마라톤은 2시간이상을 달려가야 하는 장시간의 경주입니다.
마라톤 경주자는 최소한 10km를 지날 때 30km를 지날 때 그만두고 싶은 감정을 가진다고 합니다. 신체에서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라톤을 완주하는 경주자들은 그 포기하고 싶은 본능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ale음의 마라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내하여 포기하고 싶은 순간순간을 이겨내며 달려가는 경주입니다. 인내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인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위한경을 그저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앞에 놓인 장애와 곤란을 극복해나가는 힘입니다.  인내는 장애물이 있어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장애 때문에 지연되는 대에라도 낙담하지 않고,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굳굳히 버티며 나가는 추진력입니다. 인내에는 희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내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달 흔들림이 없는 마음이 인내에서 비롯됩니다. 믿음의 경주자는 반드시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성품으로 빚어져가는 것 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어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 1:2-4)
마지막으로 결승적음 바라보라.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를 달려가는 사람은 경주가 시작되는 출발점에서는 결승점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마음속에 자신이 달려 갈 결승점을 그려놓습니다. 그래서 그 결승점이 자신의 시각 속에 나타나지 않으면 계속해서 달려가는 것 입니다. 결승점은 경주자들이 가야 할 최종의 목적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결승점에는 그 경주의 끝을 표시하는 하얀 선이 쳐져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앙의 마라톤은 소풍이 아닙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구경하며 즐기며 다니는 관광여행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정해진 목표를 달려가야 하는 순례자의 길입니다. 때로는 질퍽한 진흙길을 달려야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파른 언덕길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혹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포기 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경주입니다. 쓰러지더라도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힘을 내어 달려가야 하는 인내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승점을 항상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를 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주 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믿음의 출발점에도 계시고 믿음의 결승점에도 계신 분입니다. 그는 믿음의 찬시자이시오 믿음의 완성자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인도하시는 분 인시기도 하십니다. Eric Liddell이 하늘을 보고 뛰어가듯이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하고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면 완주 할 뿐만 아니라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인도하심은 정확하셔서 믿음의 경주자들이 달려가야 하는 바로 그 길을 track을 벗어나지 않게 하십니다. 그의 힘은 무한하셔서 믿음의 경주자들이 지치지 않는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그의 말씀은 생명수이기 때문에 경주에 지치고 갈한 목을 축이며 새 힘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사랑은 광대하셔서 믿음의 경주를 다한 자들을 등수에 관계없이 품에 안으시며 믿음의 상을 주십니다. 그는 우리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각종 장애물들을 넘을 수 있게 하십니다. 그는 우리가 건널 수 없는 길을 사랑의 다리로 연결하셨습니다. 그는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고 자신의 피로 막힌 담을 헐고 모든 길을 평탄케 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믿음의 경주의 원칙을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위해서 우리는 온갖 무거운 짐과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인내로써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고 있습니까?
바른 track에서 달려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습니까?
눈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맞추고 있습니까?
Eric Liddel처럼 하늘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께로 시선을 맞추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가십시오.
주님께서 도우십니다. 격려해주십니다. 힘을 주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처럼 저희도 끝까지 이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게 도우소서. 오직 예수그리스도께 시선을 맞추게 하옵소서. 새 힘과 능력과 생명수를 날마다 주셔서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는 믿음의 경주자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hopegiver: 집에서 목사님 목소리를 들으니까 참 이상하당~~~! ^^ 다시 또 잘 들었습니다. -[10/10-18:54]-


관리자: Audio File이 웹에서 제거 되었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관리자에게 메일주십시오.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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