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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구원 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눅 23:39~43)


 

구원 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눅 23:39-43)

 

1.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파산한 집을 떠나 각자 다른 길로 갔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알코올 중독이 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있던 한 심리학자가 그의 연구 조사에서 이 두 청년을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한 청년은 깨끗하고 빈틈없는 금주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다른 한 청년은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희망 없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심리학자는 이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변하였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청년의 대답은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내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를 가졌었다면 어떻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삶에 차이를 가져다 주는 것은 삶에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이라도 이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2.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습니다. 인생에 위기의 순간이 왔을때,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지날때 우리의 반응에 따라 그 고난이 축복이 될수도 있고 저주가 될수도 있습니다. 고난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면 그 고난은 축복이 됩니다. 위기가 기회가 될수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고 말한것입니다. 고난중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면 그 고난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유익도 없는 그냥 고난일뿐입니다.

누군가 나의 인생은 정말 아무런 어려움도 없고 문제도 없다, 그저 순탄하고 행복하다고 한다면 그것이 정말 복된 인생입니까?

그것은 세상에 대해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있어야만 그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향해 눈을 열고 귀를 열면 석가모니가 말한것과 같이 인생은 고해라고 느낄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해답을 줄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의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 죄에 있음을 몰랐기때문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않으면 세상속의 문제의 그본적인 해결이 없습니다. 그것을 해결하러 오신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늘 두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공통점이 너무 많습니다. 동일한 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동일하게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동일한 무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일한 거리를 두고 달려있습니다. 동일한 시간을 예수님과 같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동일한 시간과 때와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 같이 달린 두 강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직전에 완전히 다른 결과가 일어납니다.

사실 그들은 처음에는 똑같이 예수님을 모욕하고 욕하였습니다. 주위에 있는 무리들이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고 욕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신분과 상황을 잊어버리고 부화뇌동하여 같이 욕하였습니다. (마태 27:39-44)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侮辱)하여 40.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戱弄)하여 가로되 42.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43.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4. 잠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그 강도 중 하나는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눅 23:40-42)

하나는 그 사람(다른 강도) 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강도 중 하나가 어찌된 영문인지 십자가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자신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받아 들이고 그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는 그 회개한 강도에 대해 별로 아는바 가 없지만 한 가지 만은 분명합니다. 어떤일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인생에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것입니다. 친구를 잘못 선택했고 가치관을 잘못 선택했고 행동을 잘못 선택했을수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기 전까지 그는 그의 삶을 잘못 살아온 인생의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올바른 고백을 하게 된것입니다. 결국 그가 내린 단 하나의 올바른 선택이 지금까지 해온 잘못된 선택들을 상쇄시켜 버립니다.

 

5. 그는 패배자로서 생을 마감할수밖에 없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십니다.

그는 완전한 인생의 실패자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저주로부터 속량 받게 됩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풀려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을 살지는 못했지만 그 강도 때문에 오늘날 많은 전도자들이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잃어버린 영혼에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않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상황가운데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강도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거부하였고, 다른 강도는 예수님을 구주로서 믿고 받아들였던것입니다. 그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곁에서 보고 듣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복음은 이와같이 두가지의 반응을 일으킵니다. 믿느냐, 믿지않느냐 다른말로 하면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6. 다시 십자가의 사건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구원받은 강도가 구원받을만큼 착한 일을 했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이유가 된다면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는 십자가의 사건 그현장에 있었고, 마지막 순간에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님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구원은 행위나 자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원해서 받는것이 아닙니다. 또한 구원은 내가 노력해서 얻을수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원해서도 아니요,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 선행으로는 구원받을수없습니다. 하나님의 선에 인간의 선행을 비교한다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내가 잘나서 받는것이 아니요, 내가 뜀박질을 잘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요,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바로 그런 일이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7.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앞에는 복음이 펼쳐져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30절과 같이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는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게 되면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완전히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가공할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안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뒤집어 엎는 것입니다. 저도 제 인생에서 그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 받고 쓰임을 받는 길이냐? 아니면 저주 속에서 죽는 길이냐 우리 앞에는 그것이 놓여있습니다. 우리의 할일은 하나님께서 하신일을 겸손히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았을뿐입니다. 이유는 알수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잘못을 매일 기록하신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8.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회개와 기도와 간구로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그 분의 긍휼을 구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용서와 회복을 경험하게 되기원합니다. 주님의 은혜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인생의 종말을 알지 못하고 주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그런 사람을 떠올리면서 간절히 기도하기바랍니다.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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