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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메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에스겔서 37:1~10)

진리는 반복되지 않으면 습득되지 않습니다.  학습은 반복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무언가를 배우려면 처음에는 단순한 것을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익혀야 합니다.

구약을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한번 말씀하신 후 그만 두신게 아닙니다.  같은 내용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계속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1:1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In the past God spoke to our forefathers through the prophets at many times and in various ways,)"

제가 중학교 시절 야구 (Baseball) 선수를 했습니다.  매일 연습을 했는데, 매일 똑같은 것을 했습니다.  달리고 (Running), 공을 치고 (Batting), 공을 받는 (Catching)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실제 Field에 나가서 시합(Game)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매일 되풀이된 반복적인 연습이 나를 실제 시합을 할 수 있는 선수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마치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분을 높여 드리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예배는 결코 구경하는 것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지음 받고 구속된 존재입니다.  (에베소서 1:6, 14)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 드리는 영광스러운 예배가 새 예루살렘 성, 하나님의 도성 (the City of God)에서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예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답고 거룩하며 충만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7:9,10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일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옆과 어린양 앞에서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하니"

그러면 이 땅의 예배는 무엇인가?

하나님나라에서 드릴 예배를 반복하는 연습입니다.  언젠가 영광의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보며 드릴 예배를 위해 준비하고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지상의 예배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영광을 받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한 복음 4:23,24)

예배는 이처럼 중요합니다.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 중에서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배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배는 그저 않아서 설교 듣고 찬송가 부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시간이요 하나님의 임재의 순간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살아있는 참 예배를 드리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에 귀한 사명을 주십니다.  말씀으로 주십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시는 사명을 말씀하고자 합니다.  그 사명이 오늘 본문 에스겔서를 통해 주어지고 있습니다.  

에스겔의 히브리어 의미는 "God is strong" (하나님은 강하시다)입니다. 하나님이 강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는 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힘있는 교회, 영항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 보아도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라고 느끼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 에스겔 37장을 보면 골짜기 가운데 마른 뼈들이 가득합니다.  바로 죽은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사망한자)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니 그 뼈들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생명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말씀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시고 믿음이 생기게 하십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에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Vision, Vision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Vision이란 사람이 지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모방하고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Vision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1:1절을 보겠습니다.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명은 분명한 것입니다.   때와 장소까지도 분명합니다.  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이 부분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늘이 열리는 것을 어떻게 보며 하나님의 이상, 즉 하나님의 Vision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에스겔 37:1에 보면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라 되어 있습니다.  그 신이란 바로 the Holy Spirit 즉 성령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하기 직전 성령 충만하여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듯이 성령 충만하면 하늘이 열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Vision을 주실 때는 성령충만을 주십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늘의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8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습니다.

성경을 볼 때 그 말씀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능력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전도의 능력이 생깁니다.  섬김과 봉사의 능력이 생깁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내 나라, 내 땅을 떠나 알지도 못하는 민족과 땅에 복음을 전하러 선교 가는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7:1절에는 큰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를 그 것으로 그냥 놔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성도를 이끌어 가십니다.  어디로?  아주 마른 뼈들에게로.

구원받은 자는 구원받고 자기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1장 말씀 가운데 골짜기, 아골 골짜기 같은 세상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 곳에는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말 아주 마른 뼈와 같이 영적 사망상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 있습니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생기가 있게 하고 움직이게끔 만듭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기를 얻어 세상으로 나가 그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마른 뼈, 즉 영적 사망상태에 있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 것은 마른 뼈의 성질과 같습니다.

  1. 뼈는 단단합니다.  그 마음이 굳고 단단합니다.  
  2. 뼈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변화가 없고 행동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살리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죽이거나 멸망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 생명 주시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을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된 자, 마음이 상한 자, 눈먼 자들을 구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동참한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 것은 대언하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본문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생기를 말씀 받은 자들에게 들어가게 하고 그 생기를 받은 뼈들은 소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기 (breath of life)가 무엇일까요?  히브리어 '루하흐( )'라는 말인데 '호흡', '바람', '기운', '영'이란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도 사용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즉, 생기는 인간이 생령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생기는 사람에게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이 것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요소입니다.  사람에게 이 생기가 없으면 즉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동물과 마찬가지입니다.  짐승과 마찬가지로 되는 것입니다.  땅의 것만 생각하고 육체적인 것만 찾습니다.  하늘의 것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기, 즉 성령이 오시면, 생기를 불어 넣으시면 우리는 삽니다.

생기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요한 복음 6:63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생기의 근원이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주의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세상살이에 지치고 곤한 사람들 참으로 많습니다.  자신이 원치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소망 없이 목숨이 붙어있으니 산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낙망하고 절망한 사람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사람의 말 몇 마디나, 조그만 도움으로 근본적인 위로나 해결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본인의 마음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갖게 되면 자신이 놀라운 힘을 갖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 소망과 힘과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 교우들 모두도 이런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축복하기를 바랍니다.  핀잔이나 면박의 말,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가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듭니다.  좋아야 할 관계가 금이 가게 만듭니다.  서로 사랑해야 할 교우끼리 미움을 갖게 만듭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렇게나 하지 못합니다.  (베드로전 4:11) 예쁘게, 공손하게, 단정하게 말씀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가 아름답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로 인해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을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실 때도 하나님께서는 질서 있게 체계적으로 하셨습니다.  그 창조의 과정을 한번 볼까요.

  1. 를 만드십니다: 뼈는 전체적인 구조를 의미합니다.  Frame을 이루는 것입니다.
  2. 힘줄: 동력을 전달하는 체계입니다.   움직임을 일으키는 장치입니다.  명령을 받아 실행하는 몸의 부분입니다.
  3. : 형태를 만드는 조직입니다.  뼈와 힘줄을 보호하며 일정한 부피와 모양이 되게 하는 조직입니다.
  4. 가죽: 뼈, 힘줄, 살을 보호하는 Skin입니다. 형태를 유지하게 합니다.
  5. 생기를 넣는 단계를 거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을 조직적인, 체계적인 절차를 걸쳐서 만듭니다.  이 얼마나 오묘한 과정입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이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십니다.  요한 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은 생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대로 밝히시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즉 대언하게 되면 그 마른 뼈들이, 사망을 당한 자들이 움직이며, 소리를 내며, 서로 연락하게 짝 맞추어 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무언가가 움직입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서로 연락되고, 움직이는 소리가 납니다. 무엇인가가 붙고 차오르는 것 같은 모습이 보입니다.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고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죽도 밥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반드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생기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운행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이루신 그의 교회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됩니다.  능력을 행사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이루어 드리는 주님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이고 조직이 있고 Program이 있고 건물이 있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것에 하나가 없으면 그 것은 죽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말장 헛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주님의 사랑이 없고, 즉 성령께서 계시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생기는 사방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든지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대언할 때마다 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주님의 생기가 임하시면 죽은 자가, 사망 당한 자가 살아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족, 나의 이웃과 나의 친척과 나의 친구들을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너희가 살리라. 너희가 생명을 가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최종적인 것은 큰 군대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사들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사탄과 마귀와 대적들을 싸워 이기는 병사들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일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 주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마귀와 더러운 영들에 포로된 자들에게, 참 생명을 부여하고자 오신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그의 영이십니다.  그 분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기와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을 우리가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얘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의 주이심을 말하고 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나는 이들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생명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대언자들이 되어 살려는  일에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생명은 생명을 전합니다.  즉, 구원받은 자는 구원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이 살리는 일에 선지자적 소명을 가지고 나아가는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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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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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