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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아버지의 사랑 (요한복음 3:16)

지난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주시는 사명을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서 37장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살리라. 하나님은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개인도 살리기를 원하시고, 개인이 모여 이룬 교회도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마른 뼈에 생기가 들어가니 마른 뼈가 살아나 큰 군대가 이루어 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죽어 있는 영혼에 성령께서 들어와 역사하시면 우리는 살아 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마다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리는 힘이 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63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리는 것이 영이니 육은 무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저는 우리교회가 힘있는 교회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영 즉 성령에 의해 인도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의 특징은 사랑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향하는 사랑이 넘치고, 둘째는 이웃을 향하는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한 곳은 굳이 찾으라면 요한복음 3장 16절인 오늘 본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잃어버린 영혼들이 이 말씀을 읽거나 듣고 주님께 돌아옵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날 설교 중에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던 중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영접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이 말씀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진리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 숨쉬고 생각하고 보고 느끼는 것과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reality 사실입니다. 제가 그이상 사실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세상이 보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여타 종교의 창시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이십니다.
우리가 말하는 역사, History는 바로 그 분의 이야기 His Story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도덕 혹은 윤리를 강조하고 인간의 의지와 선한 행위를 통해 어떤 경지 혹은 영혼의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어떤 행위들을 통해서 자기성찰과 깨달음에 도달되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모든 역사의 중심에 계신 예수님 역사의 주관자이신 예수님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는 바로 역사의 실체이십니다.

창조주로서 인간과 만물을 만드신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지금 여러분과 제가 호흡하는 이 공기를 마시고 이 땅을 걸어 다니셨으며 우리와 같이 울고 웃으셨으며 사람들과 함께 먹고 하셨다는 것, 정말 가슴이 뛰는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그것은 꾸며낸 동화나 우화도 아니요, 상징적인 이야기도 아니요 우리가 지금 살아있다는 현실보다도 더 분명한 역사적사실이요, 진리인 것을 분명히 믿으시지요?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면 성경의 어떤 부분을 보더라도 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만나게 됩니다. 바로 역사의 실체이신 예수를 피부로 느끼고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저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믿지를 못합니다.
심지어 크리스찬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성경 속의 기적을 우화적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사야 42장을 통해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는 그 보다도 더 무지하고 우매한 사람이었습니다.

맨 처음 신약성경을 읽어보았을 때는 4복음서를 읽어가면서 뭐 이렇게 비슷비슷한 내용의 글들이 적혀있나 하고 별다른 느낌도 없이 참 웃긴다 하고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더욱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압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 성경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로 믿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여러분들에게도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언제나 그 분은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면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 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가지시고 아무 것도 답답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그 분이 무엇 때문에 천한 인간의 몸으로, 한계성을 가진 사람의 형태로 오셨는가 말입니다.
게다가 단숨에 진멸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어리석고 악한 인간들의 조롱과 수모와 멸시와 오해를 받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을까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바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그 분은 스스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분이 온갖 정성과 사랑을 가지고 그의 형상을 따라 지었던 인간을 바로 우리들을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9:15 같이 찾아 보시겠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요즈음은 자기자식을 잊어 버리는 부모도 많은 것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결코 우리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은 죄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보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바라보셨습니다.
로마서 3:23 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인간의 상태 위치를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내려오시는 방법이외는 단절된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고자 대신 죽으신 그 분의 살랑이 참으로 가슴깊이 느껴지십니까?
(노래)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흘린 보혈로 정케하옵소서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십자가에서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영광을 보았던 파니 J 크로스비는 바로 이렇게 찬송시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1988년 12월7일 그러니까 이 무렵쯤 동유럽 국가이고 구 소련의 영토였던 아르메니아의 북서쪽 지방에 엄청난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 지진으로 인해 3분만에 2만 5천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은 대단한 재해였습니다.
바로 그 피해 지역에서 지진이 지난 직후 겨우 살아난 아버지가 자기의 아들을 찾아서 아들이 있는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낮이어서 아마도 수업 중이었을 아이들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달려가서 목격한 것은 학교건물은 폭삭 모조리 주저 앉아서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그 어디에서도 사람이 살아 있을만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참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눈앞에 벌어진 광경과 상황은 충분히 실낱같은 희망, 아들이 살아 있으리라는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고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틈틈이 자신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지 바로 거기에 있을거야.” 하고 말해왔습니다.
모든 정황은 절망적으로 보였지만 그는 바로 자기아들의 교실이 있던 곳이라고 믿어지는 그 장소에서 돌을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비탄에 잠긴 다른 부모들은 흐느끼고 통곡하면서 “내 딸아” “내 아들아” 하고 서 있을 뿐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단 한면의 생존자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처참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의 대답은 “나는 내 아들에게 그 애가 나를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지 그 애를 위해 그 곳에 있겠노라고 약속을 했어요. 나는 계속 땅을 파야 합니다.”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지만 그는 용기있게 혼자서 계속했습니다. 다만 속으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은 하면서 말입니다.
“내 아들이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는 자기 능력 이상의 끈기와 힘으로 땅을 파기를 계속했습니다. 8시간이 지나갔습니다. 12시간 24시간 36시간 그래도 아무런 기적이 없습니다. 그러고도 두 시간을 더 38시간이 흘렀을 때쯤 막 무거운 돌 하나를 들어올릴 때 어떤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습니다.
“Armand”! 그가 아들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빠! 저예요 알만드예요!” 그러면서 “내가 다른 애들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만약 우리 아빠가 살아있으면 반드시 나를 구해내실 거고 너희들도 구해낼 거라고 했어요.
아빠가 늘 제게 절 위해 바로 그 곳에 계실거라고 약속하셨잖아요. 아빠는 정말 그렇게 하셨어요! 잠시 후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과 다른 13명의 놀라고 배고프고 갈증으로 죽어가던 아이들을 파편 더미로부터 모두 건져 올렸습니다.
나중에 그 마을 사람들이 그 Armand 의 아빠를 칭송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아들에게 약속했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위한 바로 그곳에 내가 있겠노라고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살리기 위한 구조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그는 우리를 끔찍하고 무서운 재앙으로부터 구출해 내기 위해 참으로 위대한 노력을 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 가운데 잉태되고 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자신의 참 모습을 알게 된 다윗은 시편 51편5절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기 전에는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1 에서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어떤 노력과 수고를 한다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를 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구원의 팔을 뻗치고 부르고 계십니다.
구원받으려면 그 분께 나의 팔을 내밀고 대답해야 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고, 용서를 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님으로 믿는다는 분명한 고백, 대답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께서 완전한 사람으로서 이 땅에 계실 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 같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그의 사랑을 거절한 사람들과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들 즉 세리와 창기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19세기 작가 알퐁스도데의 아들 레온도데는 의사였으나 문학 쪽으로 전향하여 소설가, 평론가등으로 활약하였습니다.
레온도데의 (여자와 사랑) 이라는 글 가운데 “어려운 것은 사랑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랑받는 기술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배척하고 거절하겠습니까? 아니면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위한 바로 그곳에 내가 함께 하겠노라고.
아버지 날에 이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을 흠뻑 취하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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