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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은혜로 받은 구원 (에베소서 2:1-10)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마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나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배하사 우리도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 저는 이번 주에 이곳 시라큐스 대학병원에 입원하고있는 뉴욕에서 온 한 할머니를 방문 한적이 있습니다 . 소생가능성이 없는 말기의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뉴욕에서 정신과 의사여서 풍족한 생활을 했고, 이웃에게 법 없이도 살수 있을 정도로 착하게 살아오신 분이라고 합니다. 평생을 의지하던 남편이 죽고, 낙심하여  갑자기 지병인 간암이 전신에 퍼지고 말았습니다. 2주일도 살기 힘든다고 합니다. 아들들은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음을 숨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며느리가 사랑하는 시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며느리의 초청으로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우리부부가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지만 우리 부부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조금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에 저희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돌아 왔습니다. 며느리의 말에 의하면 시아버지도 성경을 세 번이나 읽고 성경 지식에 해박했지만 주님을 모르고 돌아 가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해야 구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죽어가는 영혼에게 주셔야 합니다.

은혜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낱말중의 하나입니다. 은혜란 헬라어로는 카리스라고 하며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그저 주어지는 것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Amaging Grace’란 찬송가와 그 찬송가를 쓴 John Newton이 생각납니다.

John Newton은 1725년 7월24일 영국의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아직도 어릴 때 신실한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젊었을 때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사다가 파는 노예상인이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노예 선을 구입하여 노예선 성장이 됩니다. 그는 비싼 값에 노예들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인생최고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동정’이나 ‘사랑’ 이란 단어는 사치스러운 감정에 불과하였습니다. 주위에서는 그를 ‘냉혈인간’이라고 불렀습니다.

2.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노예 선에 노예를 가득 싣고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때 그는 엄청난 폭풍우 속에서 자신의 배를 조종하게 됩니다. 이제 이 엄청난 폭풍우 앞에 모든 것을 잃게 될-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 잃게 될-위험을 그는 느낍니다. 그대 그는 하늘을 향해 외칩니다.

“주여 우리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 순간 폭풍을 통해서 자신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그는 죽을 지경의 위험으로부터 살아 났습니다. 이것이 다 자신을 구속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그는 깨닫게 됩니다.

그는 죄악 된 삶을 정리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아무런 교육배경이 없던 그는 독학으로 신학과 라틴어와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합니다. 그리고  Jorge Whitefield의 지도하에서 설교와 목회를 배웁니다.

그리고 영국의 도시 Olney에서 목사가 됩니다. 그는 평생동안 권위의 상징이 목사의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항상 노예복을 입고 에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죄의 노예였던 나를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맙기 때문인다. 나는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노예복을 입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찬송가 405장에 있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는 날까지 이 찬송을 부르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인간 쓰레기 같은 삶을 살던 냉혈 인간, 노예선 선장, 노예상인 존 뉴턴이 하나님의 은혜를 회심하고 구원 받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순종했던 놀라운 실제 이야기 입니다.

3. 저는 오늘 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주권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 가운데에서 주어지는 것 입니다. 배운 것이 많다고 좋은 학벌이 있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선이나 구제 등 선행을 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가 주고자 하는 누구에게든지 그의 뜻에 따라 주어지는 것 입니다.

이것을 로마서 9:15-17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으로 말미암음이니라(16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케  하시느니라(17절)

하나님의 은혜는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강력하고 능력이 있어 어떤 것도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쩨쩨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는 은혜를 주시되 넘칠 정로도 주시는 분 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서 4장을 통해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디모데전서 1장:14절을 통해서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4)

어떤 이는 이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4. 브라질의 아마존 강은 세계최대의 하구를 가졌습니다. 7만 평방키로미터나 되기 때문에 양쪽 언덕이 보이지 않아 처음 가는 사람은 강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아직 바다 한 복판에 있는 줄로 착각을 합니다. 대서양에서 폭풍 때문에 오래 표류한 배 한 척이 식수를 구하기 위하여 겨우 이 하구에 도착했습니다. 선원들은 목이 말라 죽을 지경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타는 갈증에 무엇이라도 마시고 싶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해도 상으로는 분명 아마존 강 하구에 도착했는데 강이라고 표시하는 강의 양 언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다른 배 한척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선원중 하나가 목청을 다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는 식수를 구하고 있는데 아마존강은 어느쪽이요?”저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맑은 물 한복판에 있소. 물통을 내려 뜨기만 하시오” 그들은 이미 생수의 한 복판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풍성한 은혜의 한 복판에 있습니다.

5.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하십니다. 구원은 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사형수를 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런데 죄와 허물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죄를 용서 받아야 합니다. 즉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속전을 지불해야 합니다. 보석금이란 것이 있지 않습니까 형벌을 받아야 하는 죄인이 일정한 금액을 주고 죄 사함을 받고 풀려 나오는 것 말입니다. 누군가가 그 사형수 죄인을 위해 대신 생명을 내놓음으로써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속(redemption)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형이란 죄값을 받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가를 지불하신 것 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으로 이루어진 역사 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 1:7)

6.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사형수임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조금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9-32 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다같이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곧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살이,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부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 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우리 중에 한 번이라도 욕심을 내지 않고 산 자가 누가 있으며, 누굴 비방하지 않고 산 자가 누가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수군수군 하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법은 분명히 사형에 해당하는 것을 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고 대신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사함을 받을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그의 풍성한 은혜의 혜택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그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석방하면서 의롭다고 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악인을 선하다고 선언하거나 죄인이 아니라고 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해 값없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전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속죄가 없이는 의롭게 될 수가 없습니다.

7. 에베소서 2:8.9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갈증으로 목이 타서 죽을 지경에 이르른 선원들이 이미 아마존 강에 들어섰는데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 강물을 퍼 올려서 먹으면 살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의 풍성한 은혜로 생명의 길을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그 생수를 떠서 먹으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이루어 놓으신 일을 믿고 그 분을 나의 죄를 사해주시는 구주로 대속주로 믿는 것입니다. 은혜와 믿음은 서로 떨어질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입니다. 믿음의 유일한 기능은 은혜가 값없이 주는 것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써만 의롭게 되는 것은 바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 입니다. 만약 인간의 모든 일 공로 협력과 기여,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귀한 피 흘림에만 있고 그것을 믿음으로서만 받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자랑할 수 없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며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 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진 구원인가를 알면 감격이 없을 수 없습니다. 감사가 없을 수 없습니다. 감사와 감격에 넘쳐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찬송과 찬양을 하게 됩니다.

나를 살리신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해서 구원에 합당한 삶 구원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순전한 신앙의 행함은 자기 의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는 행위에는 자기자랑이나 교만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기 이전에는 세상풍속을 좇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지만 구원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법을 좇고 사랑가운데서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됩니다.

8.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선물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 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삶 입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  성격이 교만한 사람은 이 십자가의 복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인간의 지성과 성격의 교만함을 낮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고백하는 겸손함 만이 십자가의 복음 앞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받고 감사하는 삶,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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