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11/  11   0
지용주 목사
믿음의 터전 되신 그리스도 (고린도전서 3:10~15)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교회를 세워가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교회를 세워가야 하며 또 하나님의 성전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어떤 신앙의 삶을 사느냐에 따라 어떤 믿음의 집을 짓느냐에 따라 상급을 받을 수도 있고 책망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아기돼지 삼형제라는 유명한 동화가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 한번쯤 들어본 이야기 일 것 입니다.

언덕 위의 빨간 지붕의 집에는 엄마돼지와 아기돼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기돼지 삼형제 중  두 형은 게으름장이 에다  먹보였고 막내돼지는 부지런하고 꾀가 많았습니다.

하루는 엄마돼지가 삼형제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도 이제 다 컸으니 집을 지어보렴엄마돼지가 말을 마치자 세 마리의 아기돼지는 씩씩하게 제각기 집을 지을 곳으로 갔습니다. 큰 형인 게으름 장이 돼지는 논에서 풀과 짚을 모아 얼른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동생을 불러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어때 내가 먼저 지었지 이제 난 낮잠을 잘 테야.” 게으름 장이 형은 어깨를 으쓱 이며 뽐내었습니다. 이것을 본 둘째인 먹보 형도 집을 후다닥 지었습니다. 주위에 흩어져 있던 나무장작들을 모아 퉁탕퉁탕 못을 박았습니다. “이제야 다 되었군.”

집을 다 지어놓자 배가 고파졌습니다. “우선 밥부터 먹어야 되겠는걸금강산도 식후경이야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은 겉으로는 단단하게 보였습니다. 이를 지켜본 막내 돼지는 형님들은 정말 빠르기도 한구나하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튼튼한 벽돌집을 지어야지하고 정성스럽게 벽돌을 한장한장 만들고 그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벽을 만들었습니다. 큰형과 둘째 형이 집 구경을 하러 왔습니다. “아니, 아직도 집이 안됐잖아” “막내는 게으르고 능력이 없단 말이야두 형들은 제 멋대로 막내돼지를 두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막내는 벽돌집을 지으려면 오래 걸리지만 튼튼해요. 비바람이 불어도 끄덕 없거든요.” 막내돼지는 형들의 제멋대로 하는 말에도 아랑곳 없이 의연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막내 돼지는 어두워질 때까지 담을 흘리며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야아 ! 이제야 겨우 끝냈군.” 막내돼지는 제 집을 제 손으로 짓고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다음날 못된 늑대가 아기 돼지들의 집을 기웃거렸습니다. 늑대는 먼저 볏짚으로 지은 집을 살폈습니다. 게으름장이인 큰 형의 집이었습니다. 늑대는 볏짚으로 지은 집을 불어서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큰 형 돼지를 잡아먹으려고 달려 들었습니다. 가까스로 늑대의 공격을 피해 달아난 큰 형 돼지는 둘째 형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늑대는 다시 나무 장작으로 지은 집으로 갔습니다. 제법 튼튼하게 지은 둘째 먹보네 집입니다. 그러나 늑대는 먹보 형의 집도 부수어 버렸습니다. 무서워 떨고 있는 형들에게  막내는 말했습니다. “형님! 걱정하지 마셔요 . 이 집은 벽돌로 튼튼하게 지은 집이어서 아무리 늑대가 사납고 힘이 세더라도 끄덕 없어요.” 막내 돼지의 집 앞에 다다른 늑대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좋아 그럼 세 마리를 모두 잡아 먹어야지.” 하고 벽돌집을 힘껏 불어보기도 하고, 벽돌로 만든 벽에 힘껏 부딪쳤습니다. 늑대는 또 다시 벽을 부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벽돌집은 끄덕 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막내돼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많은 공과 힘을 들였지만 위험으로부터 안정하게 지켜주는 튼튼한 집을 지었던 것이죠. 막내돼지는 그렇게 튼튼한 벽돌집을 짖기 위해서 형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많은 대가와 노력을 이루었습니다. 뭘 그렇게 오랫동안 질질 끌고 있느냐고 놀리는 형들의 비웃음과 멸시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일한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은혜에서 각자의 하나님의 집을 짓기를 원하십니다. 집은 집터와 터 위에 세워지는 건축물로 이루어집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인 터가 좋아야 합니다. 본문 10절과 11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신 오직 하나의 유일한 터는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마태복음 16:16-18을 찾아서 함께 소리 내어 읽어 보시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목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 하리라.”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고백하는 바른 신앙 고백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스스로의 생강이나, 남들의 말해주는 믿음 좋은 사람 이라는 평가가 있을지라도 바로 이런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 자신의 고백이 되지 않았다면, 그런 믿음의 고백이 없었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존재 그거 이시며 존재이유 이십니다. 따라서 이 기초를 놓는 작업을 하지 않고 다른 기초로서 교회를 세워나가려고 하는 것은 잠시는 성공적 일수 있지만 결국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행위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구원 받는 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약화시키는 어떤 가르침도 교회에 용납될 수 없습니다.

율법이나 지혜나 공적이나 우리들의 열심이 구원받는데 기여를 한다고 말한다든지 십자가의 복음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어떤 이단 사설도 교회에서 가르쳐져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터는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이셨습니까?

우리 교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까?

우리 각자에게 진지하게 묻고,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 물음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런 분명한 신앙의 고백위에 기어져야 할 건축물을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본문 말씀 고전3:12을 보면 여러가지 재료물이 열거되어있습니다. , , 보석, 나무, ,짚 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되고 믿음의 고백을 하면 구원의 삶이 시작됩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쌓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성전을 짓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보다 어떠한 재료를 사용하는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보석은 귀하고 아름답고 영속적인 재료 입니다. 반면에 나무와 풀과 짚은 영구적이지 못하고 취약한 것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전을 우리의 심령에 지을 때 영속성과 견고함을 지닌 아름다운 재료로써 지어야 합니다.

금과 은과 보석 같은 영속성과 견고함을 주는 재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의 논리나 사상으로 왜곡시키거나 적당히 가감한 말씀이 아니라 순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믿음의 건축물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베드로 전서 1:23,25을 통해서

너희가 거듭나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 하십니다.

또 예레미야 23:29 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와 같이 견고함을 알려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알게 되는 것 입니다.

골로새서 2:2-4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시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안(그리스도안) 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있느니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린1:24)

우리의 신앙의 출발점과 그 기초도 예수그리스도 이시며 신앙의 건축물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 즉 말씀 이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바른 신양의 고백으로 시작을 가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말씀을 따라 살고 있다면 금,,보석으로 지어가는 성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무와 풀과 짚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사람의 지혜 세상지혜와 잘못된 교리 잘못된 가르침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사람의 생각을 얼마간 혼합하게 되면 그것은 아무리 그럴싸하게 보이고 들릴지라도 그것은 나무나 풀과 짚과 같이 가치 없고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 것 입니다. 우리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열어져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지혜 세상의 철학을 듣기에 더 빠릅니까? 세상지혜와 철학이나 사상을 한동안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다 사라지고 마는 것 입니다.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사상이 한동안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사라져가고 있듯이 말입니다. 1세기부터 생겨났던 많은 이단 교리가 역사와 함께 사라져있듯이 말입니다.

우리귀가 순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활짝 열린 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열린 마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태워버리실 것 입니다.

진정으로 구원 받은 자의 삶에는 하나님의 불 곧 성령의 불로써 죄를 태우는 작업 세상적인 것 육신적인 것들을 태우는 작업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그 뜻에 위배되는 사람의 생각과 관점에서 된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입니다. 세상지식과 자기 뜻과 판단에 따라 행해진 일들은 그것이 봉사요 헌신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것이라도 아무런 가치를 가진 일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살필 때가 되었습니다. 어떤 공력을 쌓아 왔습니까?

우리는 아기돼지 삼형제 중에 누구와 닮았습니까?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게을러서 하나님 지혜를 잃어 버리고 세상의 지혜에 매혹되어 더 귀가 솔깃해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생각을 따라 자신의 자랑을 위해 공력을 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소멸하시는 하나님의 불에도 온전히 남은 아름답고 견고한 건축물을 세우십니까?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된 구원의 근거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새롭게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고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터 위에다 말씀을 따라 살면서 경험한 삶의 벽돌을 한장 한장 쌓아 올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믿음의 시련이 올지라도 창수가 넘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성전 믿음의 사람들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축복이 우리 교회에 각 지체들에 임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rev
   은혜로 받은 구원 (에베소서 2:1-10)
지용주 목사
Next
   능력을 주시는 이름 (사도행전 3:1~10)
지용주 목사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Change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