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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능력을 주시는 이름 (사도행전 3:1~10)

세상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이름이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작명소에 가서 돈을 내고 이름을 지어옵니다.  자기 자녀에게, 후손에게 아름답고 좋은 이름을 지어주어 복스러운 운명을 살게 하고픈 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 가운데서도 작명소와 운명철학관을 드나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는 다니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좆는 행동입니다. 

성경에도 많은 이름이 나옵니다.  아담부터 시작하여 모세, 아브라함, 요셉,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바울, 베드로, 야고보등 많은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이름들은 이전에 우리가 작명소에서 받는 이름들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경영하시는 하나님이 주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붉은 흙에서 유래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물에서 건져냈다란 의미를 가집니다.  아브라함은 무리의 아버지이고 요한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고 요나단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바울은 작다는 뜻이고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열거된 이름 중에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은 예수란 이름입니다.  히브리어 말로는 여호수아라 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은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시는 이름입니다. ( 24:4) 

이 이름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이름입니다. ( 2:21; 4:12)

이 이름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이름이고 ( 5:41)

이 이름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는 이름이며 ( 8:37-39)

이 이름은 우리에게 권세를 주시는 이름입니다. ( 1:12)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이름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에는 놀라운 능력과 힘을 주는 비밀이 있음을 오늘 말씀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본문 3 1~3절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앞서 일어난 일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묻히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40여 일간을 머물면서 부활하심을 사도들과 500여문도들에게 보이신 후 하늘에 오르시면서 아버지와 자신의 이름으로 오시는 성령님을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님을 체험합니다.  12사도를 포함한 120문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방언을 말하며 기적과 이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무지했던 사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을 바로 깨닫기 시작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높이려고 건방을 떨었던 사도들이 겸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하였던 그들이 담대해지고 목숨을 버리고 주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식한 어부인 베드로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꿰뚫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땅에 오셨던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주(the Lord)이심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어찌할 줄을 몰라 외칩니다.

우리가 어찌 해야 할꼬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전전긍긍하였습니다.  어찌하면 자신들의 큰 죄로부터 과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들의 큰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묻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2:38)”

외치며 구원의 복음을 전하니 3,000명의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임하심은 자신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 회개한 후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은 후에 이루어진다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는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께 자복하고 용서함을 구하는 회개의 역사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000명이 세례 받는 역사가 일어난 후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때가 9시쯤 되었다 하니 오늘 날로는 오후 3시에 기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사도들도 이렇게 시간을 정해서 기도의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우선적으로 시간을 떼어놓고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 하나님과 교제하는 습관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하러 가는 도중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만나게 됩니다.  외관이 황동으로 아름답게 꾸며졌기 때문에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미문 앞에서 말입니다.   그 앉은뱅이는 사도행전 4:22에 의하면 40이 좀 넘었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라 함은 선천적인 불구자입니다.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의 생애에는 걷는다는 경험과 기쁨에 대해 이해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삶이요, 자포자기한 삶입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목숨이나 연명하기 위해 구걸하는 것입니다.  그저 죽지 못해 사는 삶입니다.

그런 그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습니다.  그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끼니를 생각하며 몇 푼의 동냥을 구합니다. (V3) 

그는 땅의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쓰고 없어질 일시적인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연명하는 것이 그의 최대의 관심사였습니다.

이런 그를 베드로와 요한은 불쌍히, 측은히 여깁니다.  동전 몇 닢에 의존하여 4여 년을 살아온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성전 문 아래 가장 더럽고 비참한 모습으로 앉아 먹을 것을 구걸하고 그를 측은히 여겼습니다.  사람을 불쌍히, 측은히 여긴다는 마음을 긍휼함이라 합니다. 이 긍휼함이란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지 않고는 못배기게 하는 마음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이게 베푸는 것입니다.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이에게 베푸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긍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 지니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 집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이 임하여 사람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도와 주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베드로가 말합니다. (V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되니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V7, V8절 읽어보겠습니다.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우리는 여기서 귀중하고 엄청난 사실 하나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을 잠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내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걸인이 요구하는 물질, 은과 금은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앉은뱅이 걸인이 기대하고 생각하는 것을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수치스런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그였기에 그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의 이름과 그 능력과 힘을 알았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으며 육신의 질병이 고침을 받으며, 그의 이름으로 영혼의 질병이 치유 받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의 이름에는 우주의 생사회복을 주관하시며 죄를 사하는 권세와 권능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는 성령 충만하였습니다.

그는 말씀 충만하였습니다.

그는 기도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불쌍한 앉은뱅이 친구에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던 것입니다.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V.7~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죽을 때까지 걸을 수 없다는 절망스런 상태 가운데 일어나 걷게 된 앉은뱅이는 자신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일어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찬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베드로에게 더 감사할 수 있는데도 그는 이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 일에 도구로 쓰였던 베드로도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 앉은뱅이는 성전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하신 그 일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이름은 놀라운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 성전의 사람들에게, 이웃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1:12)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2: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은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 4:12)

그래서 이 이름을 겁을 낸 관원과 장로들은 이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퍼지지 못하게 합니다. (사도행전 4:17~21)

[4: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4: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4: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그러나 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은 초대 교회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 날에도 능력과 권세를 가집니다.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바뀝니다.  생각이 달라집니다.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복음의 능력과 기적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 되는 것에서 나타납니다.

1980년대 초에 복음을 전하던 에디오피아의 한 전도자가 공산주의 혁명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취조하기 위하여 권총을 들이대고 한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심문하던 중 정치 관료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조롱하듯 물었습니다.  그래, 하나님을 믿는단 말이지.  그럼 그가 우리에게도 당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냐?”  군인들은 그들의 포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천장에 있는 전등에서 전구를 빼내더니 이 복음전도자에게 전기가 통하는 소켓에 손가락을 집어 넣든지 간단히 총에 맡든지 양자택일하라고 하였습니다.  단순히 위협하는 말이 아님을 알고서 그는 소켓에 손가락을 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고 외쳤습니다.  그 순간 지역 전체의 전기가 나갔고 복음 전도자가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안 공산주의 혁명군들은 두려워하며 테이블 밑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관리들은 그냥 전도를 그만두라고 명령하고는 내보낼 수 밖에 없었으며, 놀랄 것도 없이 그들은 다음날 다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를 발견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 전쟁상태에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싸우면 백전백패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싸워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워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영적 전쟁의 한 복판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부정과 분열과 불순종을 유발하는 악하고 더러운 어둠의 영, 어둠의 권세를 대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권세를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의 삶,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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