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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함 (사무엘상 7:1~6)

1.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빨리 왕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셀 폰이 지구의 어느곳에서도 통화를 가능케 합니다. Fast Food 가 보다 인기있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요즈음 일년동안에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양이 중세시대의 한세기에 나오는 양과 같다고 합니다. 다니엘서의 마지막때의 예언과 같이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는 말씀의 성취를 보고있는것같습니다.(다니엘 12:4) 우리는 정말 바쁘고 번잡한 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못하면서 사탄의 전략에 말려들수있습니다. 사탄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생각하지못하도록 정신없이 바쁘게 만드는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 세상에 있는것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루를 지내는 동안 하나님생각을 하는 때가 얼마만큼 있습니까? 날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않고 혼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로 가득차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못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기고 사랑할 인격적인 분으로 보지않고 재앙으로부터 지켜주는 부적이나 복을 비는데 쓰는 복방망이같은 비인격적인 존재로 대하는 지도 모릅니다.

2. 정말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얼마만큼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 분을 알기를 소원하고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전심으로 찾는 자를 만나주시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란 그 분이 언제나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만 우리의 영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것, 하나님과의 고요한 친교, 하나님을 신뢰하는것, 그로 인한 영혼의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영혼의 생명이요, 양분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필요한 연습은 곧 하나님의 임재연습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동행안에서 끊임없이 기쁨을 발견하고, 매 순간 어떤식으로든 대화의 막힘이 없이 항상 그 분과 사랑안에서 겸손하게 이야기를 나누는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특히 유혹과  슬픔의 시간, 하나님과 분리돼 있는것같은 시간, 그리고 불성실과 범죄의 시간에 더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우리 영혼은 곤고해집니다. 방황하게됩니다. 생명력과 평안을 잃게 됩니다. 

3. 저는 오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있었던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회개하며 다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 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표시로 언약 궤와 성막 짓기를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언약 궤- 하나님의 궤가 있는 지성소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만나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궤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과 계시와 언약의 보증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광야생활에서 이 하나님의 궤를 앞세우고 행진하였고(민 10:17), 요단강을 건널 때도 언약 궤를 앞세우고 건넜으며(수 3:11)또 여리고를 정복할 때도 언약 궤를 앞 세우며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수 6:4) 그래서 그들은 승리하였고 보호되었으며 번성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시대 이스라엘은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살아계신 하나님대신 하나님의 궤를 마치 우상과 같이 주술적으로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참 신앙은 사라지고 언약 궤가 능력의 원천인양 잘못 믿는 태도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철기병기를 쓰는 그 당시 막강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 이스라엘은 실로로부터 하나님의 궤를 에벤에셀로 옮기게 됩니다.
사무엘상 4: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백성이 집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 궤를 실로 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그렇습니다. 전쟁의 승리에 눈이 어둔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언약 궤를 사람의 생각대로, 자신의 유익의 재료로 생각하였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언약 궤 자체를 숭배하게 되는 큰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4.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참 신앙심 없는 일반사람들이 십자가를 자신을 보호해주는 부적처럼, 혹은 장식물처럼 달고 다니는것과 같은 일이겠지요
이와 같은 미신적 신앙과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배의 결과로 나타나며 급기야 하나님의 언약 궤를 빼앗기게 되는 이스라엘 역사의 최대의 수모를 당하게 되는 것 입니다.
사무엘상 4:10.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또 사무엘상 4: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언약 궤를 잃음은 곧 여호와의 임재하는 곳을 잃었고, 그러니 하나님의영광이 머물곳을 잃어 버렸음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궤가 있는 지성소를 통해서 선택된 이스라엘을 만났습니다. 언약 궤가 없는 지성소는 무의미한 것 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하나님의 계시가 없는 곳은 이미 더 이상 지성소가 아니며 예배의 처소가 되지 못하기때문입니다.

5. 오늘날 역시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여러 성전을 볼 수 있으며 우리교회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도록 삼가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20년간 이스라엘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통해서 살아오던 자들에게 하나님이 떠난 삶은 비참한 것 입니다. 마치 아버지의 보호아래 아버지의 공급해주시던 것으로 살던 아들이 그 모든 것을 잃게 된 것과 같은 것 입니다. 그들은 힘없고, 능력이 없어져서 돼지 죽통을 찾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품과 아버지를 그리는 탕자처럼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게 됩니다. 여기서 사모 하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나하) ‘몹시 슬퍼하다’ ‘큰소리로 울부짖다’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의 신세한탄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돌아오심을 위해 울부짖었다는 것 입니다. 참으로 지난 날의 잘못과 허물을 회개하였을 것 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던 과오를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되었을 것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저희들에게 한번 더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울며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하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애타는 갈증이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족과 나라의 운명에 대한 애타는 마음으로,  블레셋의 위험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갈망이 있었을 것 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타는 목마름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목마름을 사용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6. 누가 영혼을 살립니까”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존 낙스가 “스코틀랜드를 주시옵소서, 아니면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 했던 것처럼 영혼에 타는 목마름이 있는 백성들 그런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는 다른 영혼을 살리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그런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건 조직이건 목마름이 없는 단체는 오합지졸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 하나님을 향하는 목마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6에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 임이요”라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아구까지 찼을 때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보내어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명령하십니다. 이것이 오늘본문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7. 본문 3,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除)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除)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조건이 필요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앞서 지켜야 할 명령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우상을 마음에서 제해야 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안에까지 들어온 이방신인 바알신과 아스다롯신을 마음에서 제하는 것 입니다. 바알신은 ‘만유의 주’ ‘소유자’란 뜻을 가진 가나안 족속의 최고의 남신이었고, 아스다롯은 ‘다산’ ‘생식력’의미를 가진 최고의 여신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두 신은 세상적인 풍요와 육체적인 정욕과 관련된 것 이었습니다.
이 두 신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이 땅의 쾌락과 가치를 숭배하게 하는 신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세상의 우상을 제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호와하나님을 향하라 즉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드리라는 것 입니다. 내 마음에 있던 이방 신을 버리고 난 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넣으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사고를 하며,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고, 하나님관점의 가치를 가지라는 것 입니다. 내 인생의 가치의 최우선이 하나님이 되게 하라는 것 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 무엇인가로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다른 어떤 것 불순하고 악한 것 탐욕적인 것으로 채워지는 것 입니다. 그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되며 하나님께로 향하는 참된 헌신과 예배가 있는 온전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입니다.

셋째는 하나님만 섬기라 여기서 섬기라는 말은 “숭배하다” “예배하다” “복종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한 분만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복종하라는 것 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말라는 명령이십니다.
세상에도 하나님에게도 양 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우매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 입니다.(야고보서 1:6-8)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우리는 오직 한 마음, 나누어지지 않은 전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세상의 가르침을 좇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고, 그대로 행하여야합니다. 행하지않는 것은 진실고 믿지않기때문입니다. 진실로 믿으면 행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 이었습니다. 즉 블레셋의 억압과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곤고한 삶으로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애타게 사모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통해 전해졌던 하나님의 말씀과 그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除)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8.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된 신앙, 미신적인 믿음으로 인해 벌어졌던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역사의 한 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언약 궤를 빼앗긴 것과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것입니다. 곧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는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처럼 목마름이 있으면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매듯이 주님을 찾는 갈급함 목마름이 있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목마름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의 영혼에 말씀하여 주실 것이며 목마름은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것 입니다. 목마름은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들어가는 축복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9. 19세기 최고의 전도자였던 D.L무디가 런던의 어떤 교회에서 부흥집회를 할 때 입니다.
한 거지소년이 그 얘기를 듣고 무디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멀고 먼 길을 맨발로 걸어서 드디어 그 부흥집회가 있는 교회에 도착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착의 기쁨과 안도감, 흥분을 안고 교회 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문을 지키던 사람에 의해 저지되고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소년의 남루하고 초라한 행색 때문에 교회 입장을 못하게 한 것 입니다. 실망한 소년이 계단 밑에 쪼그리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데 누군가가 소년의 등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리고 우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얘야 교회 밖에서 왜 우니?”
그는 울먹이며 그 이유를 대답하였습니다.
“아저씨 저는 무디 선생님의 설교를 듣고자 먼길을 걸어서 이곳에 왔어요. 그런데 제가 입은 초라한 옷때문에 저를 들어 가지 못하게 해요. 저는 무디 선생님의 설교를 꼭 듣고 싶어요.”
그 신사는 그 소년의 손을 꼭 잡더니 함께 교회문 앞을 지키던 사람을 지나 가운데 교회 통로를 죽 걸어가서 맨 앞자리에 소년을 앉히고서는 설교 단을 향하여 갔습니다.
그 신사는 바로 DL무디였던 것 입니다. 그 거지소년의 말씀에 대한 갈망, 목마름이 무디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에 목말라하고 말씀을 갈급한 심정으로 사모할 때 우리의 주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의 손을 잡고 잔잔한 냇가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맑은 물, 좋은 꼴을 먹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할때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언제나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향하여 목말라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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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