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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세상의 빛 예수 (요한복음 8:12~20)

1. 지난 11일은 한국의 2대 명절인 추석이었습니다. 한국이나 다른 곳에 계시는 부모님들과 형제 자매나 친지들에게 안부 전화를 나누었을것입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 추석과 같은 명절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런 사회적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에 올라가셔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40년동안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여 지켰던 일종의 추수 감사절 입니다.(레위기 23:39.41)

2. 원래 ‘초막’ 이란말은 tent를 의미합니다. 광야생활에서 그들은 tent를 치고 살았습니다. Tent는 제대로 지어진 집과 달라서 낮의 열기와 밤의 냉기를 제대로 막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햇살을 적당히 가려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가운데에서도 그렇게, 어려운 삶의 고비고비마다 구름기둥으로 , 불기둥으로 여러분을 지켜주신 하나님이십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광야 생활을 통해서 애굽에서 살 때에 그들의 삶 속에 배어있었던 세상적인 문화와 습속과 생각들을 하나씩 버리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배워갔던 것입니다.
광야의 삶은 tent치고 tent걷고 떠나고 다시 푸는 삶이 반복되는 것 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실에 안주하지않고 부르심을 따라 떠나는 삶인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성도의 삶은 광야의 삶이요, 나그네의 삶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중 누구인들 이 땅에 영원히 머물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가수 중 최희준 씨가 있지요
그가 부른 노래 중에 “인생은 나그네길”이란 노래 혹 기억나십니까?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정처 없이 왔다가 정처 없이 가는 것 이라 노래 불렀지요

3.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인생이 나그네길은 맞지만 정처 없이 왔다가 정처 없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삶이 다른 것 입니다. 오는 곳과 가는 곳이 분명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5,16절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가야할 곳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광야생활, 나그네 생활에서도 불안해 하거나 초조해 할 이유가 없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마음에 안도감이 있고 여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거쳐가지만 가야 할 목적지가 분명했습니다. 그 곳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광야의 삶이 힘들겠습니까? 쉽겠습니까? 물론 고달프고 힘들고 피곤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하셨기 때문에 낮의 해가 그들을 상치 아니하였고 밤의 달도 해치 못하였습니다. 함께 그 말씀을 찾아보실까요.
시편 121:5-8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바로 이 말씀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십니다.

4. 우리가 오늘도 일어나서 이 곳에 와서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흡을 주시고 기력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광야 같은 삶에는 누구나 어려움과 고통과 환난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그런 어려움과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남의 나라 땅인 이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삶이 참 힘들고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른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그 어려움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힘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신명기 8장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5.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을 그 험한 광야에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옷이 해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입히셨고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지키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헐벗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발이 실족치 않도록 강하게 만드시고 지켜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같은 광야생활에서 그들을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 지켰던 것이 초막절이었습니다. 그 초막절에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 성소에 있는 “여인의 뜰”에 있는 네 개의 금 등잔불을 비추어서 밤에도 성전을 환히 밝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초막절은 밤을 밝히는 빛, 어두움을 쫓아내는 빛과 관련이 있습니다.

6. 오늘 본문 12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빛이라고 하신 말씀이 성경에 여러 군데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9절을 통해서 예수님이 사람들의 빛이고 참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그(예수 그리스도)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또한 예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빛이실 뿐 아니라 온 이방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죄로 인해 탐욕으로 인해 멸망해가는 세상, 절망과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그의 빛이 비추면 거짓은 드러납니다.
그의 빛이 비추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그의 빛이 비추면 죽은 것이 다시 소생합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그의 빛이 비추면 길을 잃고 세상에서 방황하던 자가 길을 찾게 됩니다. 더 이상 길을 잃고 헤매지 않습니다.
어둠에는 차가운 냉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어둠이 있는 곳에서는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그 힘을 잃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두움을 밝히는 것은 오직 빛이 올 때만 가능합니다.
빛이 오면 어두움은 자연히 물러갑니다.
빛이 오면 어둠 속에서 자행되던 불법과 부정이 사라지게 됩니다.
빛이 오면 따뜻함이 살아나고 부드럽게 변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는데도 마음이 차갑고 냉냉하다면 그건 분명히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 입니다.
빛이 오시면 따뜻한 열기가 생겨나고 만물이 소생하듯 생명력이 움틀 거리며 살아나게 됩니다. 사랑이 속에서 솟아 오르게 됩니다.

7. 그러나 우리에게는 원래 빛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근본적으로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오시면 그의 빛이 나를 통해서 비춰지게 됩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주님께서 제게 귀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 60장 1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빛을 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비록 작지만 빛을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마다 주위를 밝혀주는 빛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요즈음은 이웃끼리도 서로 인사도 안하고 사는 삭막한 세상이 되었지만 이웃을 만나면 다정한 웃음으로 안녕하세요, Hi하고 인사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소 띤 얼굴과 간단한 인사 한마디도 주위를 밝혀줍니다. 밝은 얼굴과 따뜻한 말씨, 감사하는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복음의 도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등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8. 세상의 수 많은 사람들이 길이신 예수님을 찾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가운데 사탄이 뿌려놓은 독과도 같은 것들에 빠져들어 죽어갑니다.
사탄이 심어놓은 지뢰를 밟아 불구와 같은 삶을 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사탄이 만들어 놓은 많은 함정과 덫과 위험물이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중독되게 합니다. 알코올중독, 마약중독은 물론 일중독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비추시는 빛은 우리를 그런 위험으로부터, 함정과 덫으로부터 지키실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지키는 사람이 되게 만드십니다.
우리는 길이신 예수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고 그러한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마 5:14)

9. 저는 큰 항구도시에서 자라났습니다. 저희 집이 산중턱에 있었는데 바다가 보이고 배가 정박해 있는 항구가 보였습니다.
항구는 내항과 외항이 있고 그 가운데 방파제가 있고 그 가장자리에 등대가 있습니다. 출어기가 되면 많은 배가 항구를 떠났다 만선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 배들은 밤에도 들어옵니다. 아마도 밤에 들어오는 배들은(배에 탄 선원들) 그 등대의 불빛을 멀리서만 보아도 드디어 도착이 되었다는 안도감과 이제 가서 쉴 수 있다는 안식에 대한 소망으로 가슴이 뛰었을 것 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이 있습니다.
때때로 바다 가운데서 큰 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폭풍을 간신히 견디고 항구를 찾는 배에 있어서 등대의 불빛은 정말로 구세주를 만난것과 같을것입니다.  이젠 살았구나 하는 안식과 안정에 대한 소망을 발견하지 않겠습니까?

10. 인간은 스스로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 재물, 명예, 학문, 쾌락을 원없이 다 해보아도 하나님이 빠진 삶은 허무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 한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아니면 도저히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는 것 입니다.
시편 63편 3,4,5절에 보면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것이라”고 합니다.
어떠한 수고와 노력도 하나님과 관계가 없을 때는 그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헛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의 결국입니다.
이 해 아래 모든 인간의 삶을 다 살펴본 후의 결론이 무엇이라고 전도서의 기자가 말합니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가르쳐줍니다.

11.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빛, 생명의 빛 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그 빛이 내 안에 들어 오십니다. 빛 가운데 살게 됩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빛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어둠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어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그들을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빛이 오면 따뜻하게 됩니다. 차가움이 사라집니다.
빛이 오면 성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죽은 것이 소생되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이 세상에서 주위를 밝혀주는 빛,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빛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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