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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그리스도의 몸, 교회 (요한복음 2:13~25)

1. 우리 시라큐스 교회는 참 복 받은 교회입니다. 아름다운 예배소에서 아무 구애 받지 않고 맘껏 예배 드리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친교실에서 얼마든지 눈치 보지 않고 한국 음식 먹고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부부가 살면서 지지고 볶고 갈라서니,마니 하면서도 붙어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들고 서로를 알아가듯이  돌아보면 그런 형제, 자매들입니다. 이 외로운 세상살이에서 서로 생각하고 기도해주는 주님 안의 한 가족들입니다. 서로 한번 마주들 보시면서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2.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사명과 성격에 대해 좀 나누고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적어도 4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합니다. 말씀은 헬라어로 케리그마 (Kerygma) 라합니다. 전도, 설교라는 말입니다. 구원의 말씀, 즉 예수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합니다. 교회의 가장 주된 존재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과 용서의 메시지, 은혜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지않다면 그 교회는 하나의 친목단체나 이익집단보다 나은것이 없습니다.

둘째, 교육입니다. 헬라어로 디다케라합니다. 가르친다는 뜻이지요. 기독교는 깨달음의 종교가 아닙니다. 교육, 즉 가르침의 종교입니다.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말씀으로 양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계속 자라가도록 가르치고 훈육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3. 셋째, 친교입니다. 헬라어로 코이노이아라고 하지요.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말씀과 기도 안에서 나누는 교제를 말합니다.

사도행전 2 44절로 47절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령에 충만했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함께 있으면서 물건을 서로 통용할 정도로 친밀한 공동체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친밀한 교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토대 위에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친교에서는 남녀노소, 연령, 사회적 지위, 인종, 민족과 국가 등의 차이와 이해관계로 인해 야기되는 장벽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을 이루게 합니다.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지만 서로를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로 존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연령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는 늙은이를 마치 부모를 대하듯 공손한 태도로써 대하라는 것입니다. 나이든 분들은 젊은이들을 귀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로 보며 사랑하고 아껴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한 가정 안에서 있는 질서와 같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자질에 대해서 무시하지 않고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17절을 보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시오,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4. 마지막으로 봉사(섬김)입니다. 헬라어 디아코니아입니다. 이 말은 본시 식탁에서 일을 도우며 급사로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섬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말씀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로 섬길 수 있습니다. 성가대로,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주일학교교사로, 맞이하고 안내함으로써, 주차봉사로써,교회를 깨끗이 청소함으로써, 부엌에서 음식을 마련하고 서브함으로써 섬길 수 있습니다.

모두가 몸으로, 손으로 섬기는 노동의 의미가 있습니다. 섬김에는 노동이 있습니다. 땀이 있습니다. 모든 지체가 각자의 맡은 바 직임에 충실하고 자원함과 기쁨으로 봉사할 때 모든 교회의 지체들이 그 섬김의 열매를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그런 섬김의 본을 보이셨고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하는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자는 너희종이 되어야 하리라”(마태 20:26,27)고 하셨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의 주이신 예수님이 또 이렇게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 분은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분을 따르는 사람이란 뜻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 역시 그분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릅니다. 한 부모 밑에 태어난 형제라도 다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의 은사대로 기쁨으로 섬기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을 보면 남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을 자청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 너그러움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 10절을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하십니다.

교회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이 살만한 곳으로, 아름답고 깨끗한 곳으로 바뀌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섬김이 있기에 아름다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섬김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5. 그러나 교회는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본문 13,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유대 땅과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혹은 먼 곳, 다른 나라에서 사는 자들도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먼 곳, 다른 나라에서 오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그 들이 제사드릴 때 상용할 제물을 용이하게 살 수 있는 곳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소와 양과 비둘기를 가지고 먼 길을 오기에는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나라에서 살 경우에는 사용하는 화폐가 달랐기 때문에 환전소가 필요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에 가면 미국 화폐인 달러를 은행에 가서 원화로 바꾸어 사용하듯이 말입니다.  필요에 의해서, 좋은 목적으로 시작된 환전소이고 상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것에 사람의 욕심과 이기가 들어가서 타락과 불법이 횡행하는 소굴이 된 것입니다.

 

6.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 이후 하나님은 400년간 이스라엘에 대해 침묵하셨습니다.  그 들의 타락을 내어버려 두셨습니다.  헤롯 대왕은 하나님의 명령 없이 자기 마음대로 예루살렘 성전을 증,개축 하였습니다.  자신의 위엄과 힘을 과시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 성전 안에서 모든 것들이 부패하기 시작했던 것 입니다.  처음 제사장들이 돈을 좋아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니 이 좋은 목적으로 시작했던 환전소와 매매상점이 올바를 목적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재산을 착복하는 장소로 변한 성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이전투구가 일어나는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지 않는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7. 본문 15,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장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 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이 떠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그 곳을 장사하는 집이라 하셨습니다.  이 것은 장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성전을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마가복음 11:15,16,17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그렇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기도가 있고 예배가 있어야 하는 곳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기도와 제사 즉 예배가 없었습니까?  그 당시에도 24시간, 365일 제사장들이 그 반열과 규례대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곳을 장사하는 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형식적으로 제사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것을 통하여 귀중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하지 않으시면,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없으면 장사하는 집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친목 단체나 이익집단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가 판을 치는 집단이 됩니다.

예수님은 다시 이런 행위들을 가리켜 강도의 굴혈” ( 21:13, 11:17)  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형식적이고도 인본주의적 종교행위, ,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각한 채 문자적 조문에만 얽매여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는 구습을 타파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런 성전을 헐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헐어버렸습니다.  그는 참 성전을 아셨습니다.  그는 참 성전을 어떻게 세우시는 가를 아셨습니다.

 

8. 본문 19-22절 까지 읽어 보겠습니다.

방금 읽었던 본문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성전과 다른 의미의 성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성전 즉 교회를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성령의 영감으로 깨닫고 21절을 적고 있습니다.  NIV영어번역판에서는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성전은 그의 몸이더라 (the temple he had spoken of was His body)”  바울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 18절을 통해서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하고 있습니다. 

 

또 에베소서 5:23에서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으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 되시며 교회인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지체인 우리와 연합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6:15에서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또 에베소서 5:29,30에서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 임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심신의 발달을 위한 신체적인 훈련시키시고 강건케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의 각 지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명령과 뜻에 따라 움직여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9.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체를 살펴보면 머리에서 명령하지 않고 움직이는 부분이 어디 있습니까?  단지 어떤 부위와 지체가 병이 들거나, 부러졌거나, 약해졌을 때 말고는 머리에서 명령하는 대로 신체는 순응합니다.  순종이란 게 바로 이 것입니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 대로 몸인 우리가 지체의 역할을 따라 움직여가는 그 것이 순종입니다. 

우로 가라 하면 우로 가고 앉으라 하면 앉고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는 것, 그 것이 순종입니다.

머리가 우로 가라 하는데 좌로 가면 그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하라 하는데 침묵하고 있으면 그 것이 불순종인 것입니다.  신체의 어느 부분이 고장이 나면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고, 그러면 머리이신 예수님은 그 고장

난 부분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가슴 아파하십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우리가 한 몸의 지체로 연합해 있기 때문에 전체 지체가 느끼게 됩니다.  특히 머리는 더욱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조그만 가시가 손가락에 찔리기만 해도 온 몸에 통증이 오는 것과 같습니다. 

 

10. 로마서 12:4,5 절을 보면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가지는 다양성과 동질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각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각 지체는 고유의 기능과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소중한 것입니다.  더 낫고 못함이 없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잘난 이도, 못난이도 다 보배롭고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동질성을 가지며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교회는 결코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은 아닙니다.  열 손가락이 다르듯이 다 다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하고 같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다르고 다양한 요소가 그리스도 안에서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납니다.  각 지체와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며 호흡하며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 각자는 다른 일을 하고, 다른 기능을 하고 있지만 주님 안에서 조화로운 역할과 통일된 일을 할 것입니다.

 

11. 성도 여러분!

길을 걸을 때 우리 몸의 일부에 어떤 이상이 생기면 제대로 걸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모두가 각각의 기능을 다할 때 바른 걸음을 걸을 수 있습니다.  눈은 거리를 보고 귀는 평형감각을 유지하고 코는 숨쉬고 손과 발은 적당한 폭과 전후 운동을 할 때 걸어가게 됩니다.  저는 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어둠에서 빛으로 우리를 불러내신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널리 전파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 사람을 주장하셔서 오직 그리스도만 드러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과 능력으로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성렬을 구하시고 사모하십시오. 성령 안에 거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의 능력으로 하여 내가 무엇을 하였다는 주장과 생각들이 모두 사라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영광과 찬송을 오직 살아계신 주님께로만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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