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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주 목사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요한복음 4:5~26)

1.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는가 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만남의 축복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라는 생각을 합니다.

남자는 어떤 여자를 아내로 맞는가에 따라, 여자는 어떤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 집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어떤 친구를 만나는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이 바뀌어지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한 복과 기쁨이 그리 흔치 않습니다. 만남 중에는 그?스쳐 지나가는 별 의미 없는 만남이 아니라 인생을 뒤바꿀만한 만남이 있습니다.

제 인생 가운데서도 그런 만남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만남이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혀 제가 예측해 보지도, 계획해 보지도 않았던 만남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권적인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졌던 만남이었습니다.

 

2. 오늘 본문의 수가성에 살았던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그녀의 인생을 바꾸는 놀라운 만남이 있습니다. 인생사는 재미도 없고 별 희망도 없는 이 여인이 그날도 그저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적인 일과로서 물을 길러왔을 것입니다. 5명의 남편이 있었고 6번째의 남자와 동거하고 있던 걸로 보아 육신의 갈증과 세상적인 욕망이 굉장한 여자였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이상형의 남자를 찾아 방황했던 완전주의자 였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살다 보니 이 남자의 단점이 드러나고 그러다 보니 다른 남자의 장점이 돋보이고 그래서 한 남자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같이 살았던 남성편력이 화려한 여자 였습니다. 어쩌면 에바 가드너나 엘리자베스 테일러같이 미모가 뛰어난 여성일지도 모릅니다.

혹시나 해서 이 남자와 살아봤는데 역시나 하고 헤어진 것이 다섯 번이나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이제 세상적으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이른 갈데 까지 간 여인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습니다.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정오를 택해 물을 길러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여인도 주님께서는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그 갈증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니 15절에서 그 여인의 답이 이렇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정말로 자신의 안타까운 인생의 목마름 빈 가슴을 채워줄 수 있는 생수가 있다고 하니 그녀의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녀는 계속 세상적인 것, 땅의 것만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 있는 것들로서는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속에서 그의 만족을 계속 구해온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영혼의 갈증이 해소되지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한번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고 하시니 귀가 번쩍 뜨이지않을수 없는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그의 관심사를 땅에서 하늘의 신령한 것, 영원한 가치를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앞에서  그 여인의 질문이 놀랍게 전환됩니다. 예배를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 여인에게 가장 귀하고 거룩한 예배를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의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만남, 그 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예배, 참된 예배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에 충만한 기쁨과 만족을 부어 주십니다.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소생됩니다.

 

3. 시골에 어떤 무식한 아버지가 부흥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고 주님을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어느날 아침, 그는 부흥 강사가 가정예배는 꼭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 온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무릎을 끓게 하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는 가족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가정 예배를 드린다.” 라고 개회 선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도 가족들도 도대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아버지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더니 따라 하라고 외쳤습니다.

예수 만세!”

가족들도 모두 그 아버지를 따라 두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예수 만세를 외쳤습니다. 무식한 아버지는 그렇게 세 번을 외치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이제 됐다. 예배를 마쳤으니 가도 좋다.” 라고 했답니다.

기막힌 예배가 이루어졌습니다.

비록 우리 보기에는 어리숙하고 우스워 보이는 이들의 예배이지만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뻐 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가족의 예배 속에 하나님을 향하는 진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4. 오늘은 성경본문 내용은 참된 예배의 메시지를 안고 있습니다. 20-24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우리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몇 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

둘째, 우리의 예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

셋째는 우리의 예배는 어디에서 해야 하는 가 입니다.

 

5. 첫째로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이시라는 것 입니다.

거룩하고 지존하신 영 이신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 입니다. 그는 영이시니 세계 어디서나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를 받으시고 진심으로 예배하는 자를 친히 찾으신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운데 그는 영으로 우리가운데 임하시며 그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예배는 짐승들의 피 흘림으로 죄 사함을 받았던 구약시대의 속죄의 제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예배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 되심과 우리의 생명을 위해 다시 사신 부활의 영광을 기념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축제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주님을 향한 찬양과 주님이 주시는 말씀과 우리의 기도와 헌신, 성령 안에서 교통이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면 예배의 기본 요소들이 빠지는 것 이며 생략되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의 대상은 전지전능하시며 거룩하시며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용서 하시고, 그 외아들 예수님을 주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크신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여 기쁜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경건한 마음과 형용 못할 기쁨이 마음에 넘치는 것 입니다. 참된 마음, 전심으로 주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6. 둘째,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 것 인가 하는 것 입니다.

예배는 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한국말 성경번역은 이 말이 너무 관념적인 문구로서 해석되어 있습니다. 영어나 원어를 살펴보면 이 말은 더욱 더 선명해 지게 되는 것 입니다.

신령이란 말은 영 안에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in spirit)  엔 프로마티 이 말은 예배가 드려질 때 하나님의 영이 예배 드려지는 곳에 임해계셔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려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와 교통이 이루어져 기도와 감사와 전 인격을 드리는 헌신과 봉헌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예배가 된다는 것 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그의 구속의 은혜안에서,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 가운데 이루어지는 예배를 통해 우리 성도는 하나님과의 연합과 성도간의 하나됨을 경험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성도이며 성도들로 이루어진 것이 교회요 그 가운데서 드려지는 것이 예배인 것 입니다.

 

7. 다음은 진정으로드려야 한다는 것 입니다.(엔 알레 데이아) 이것은 자신이 가지는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과 느낌 안에서가 아니고 진리 안에서’ ‘말씀 안에서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자는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갖고 예배 드려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22절을 통해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 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말씀의 선포가 없는 감상적이고, 신비적인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선포가 없으면 그것은 예배의 참 요소가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는 말씀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 하며, 그 분께 대한 열정이 모아져야 하며, 복음안에서 새롭게 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선포되고, 열정이 모이고,  내 속에 숨겨졌던 죄들을 자백하고  회개하며, 그 능력 안에서 변화를 받는 것 입니다. 성결케되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입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복음 안에서 변화 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을 추구하던 욕심과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으로 향하는 자기부인과 자기포기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거룩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거룩의 옷으로, 빛의 갑옷으로 입혀주시며 그 안에서 포기했던  것을 성결케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 도구가 되게 하십니다.

 

8. 마지막으로 어디서 예배 드려야 하는가에 이르게 됩니다.

요한복음 4 21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며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 드리는 장소와 의식의 제한성을 탈피하는 때가 이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가? 그 때는 바로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후 보혜사 성령이 제자들에게 오셔서 임하시는 때를 말합니다.(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때 인 것 입니다.)

그 때부터 유대인이 주장하는 예배의 장소 예루살렘 에서도 사마리아인이 주장하는 예배장소 그리심산도 아닌, 특정한 장소로 제한되지 않은 어느 곳 에서든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됨을 말씀하셨던 것 입니다.

그는 장소에 관계없이 주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말씀 안에서 성령 안에서 곧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받으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이렇게 전심으로 드리는 예배 가운데에서 우리는 메시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예배가운데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의 임재와 만남을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며 기도와 찬양과 감사로 예배 드리는 날 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 곳에 오셨습니까?

몸은 교회에  와 있지만 마음은 딴 곳에 있지 않습니까? 입술로는 주님을 찬양하되 머리로는 세상의 온갖 근심과 걱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혹시나 예배를 인간적이고 형식적인 의식절차와 장소에 집착하여 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영이 이 곳에 계시면 예배의 장소와 형식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장소가 좀 누추하면 어떻습니까? 형식이 좀 다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천막과 같은 성막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예배를 받으셨으며,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듯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도 그 중심을 보십니다. 즉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신다는 것 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된 영혼의 반응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갈망에 예배의 진실성이 있습니다. 예배는 주님을 찾는 갈급한 마음에서 출발하고, 주님에 의해 채워지는 영혼의 해갈로서 마쳐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과 말씀 안에서전심으로 예배 드리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충만한 기쁨으로 가슴 벅찬 감격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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